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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 - 공포증



집에서 자고 갈 때마다 아침은 아버지의 의동생이자, 내게는 의형님인 창현이 형님의 국밥집에서 먹는다. 형님은 내 차가 우리 집 앞에 서 있으면, 아예 한 쪽 테이블을 예약석으로 빼 놓기 때문에, 기다리는 사람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방앗간의 일을 마치면 곧장 형님의 가게로 가서 아침을 먹는다.



떡집의 일상은 새벽을 가르며 시작하기 때문에,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서 불려놓은 쌀을 갈고, 주문받아 뒀던 떡을 쪄낸다. 오늘은 술떡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증편을 대량으로 쪄냈다. 증편은 공정이 까다롭긴 하지만, 발효만 잘 시키면 적은 양의 쌀로도 많은 양의 떡을 할 수 있고, 거기다 일 자체도 다른 떡에 비해 쉬워서 정기적으로 많이 하는 떡 중의 하나인데, 깨서 내려갔더니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 작은 체구의 성림씨가 이미 손을 걷어붙이고 일을 돕고 있었다.



베이킹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그런지 1차 발효와 2차 발효를 시키는 동안 부모님과 떡과 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꽤나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나는 알아먹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더구나 우리 집에서 쓰는 이스트를 보더니, 가격을 묻고, 자신이 더 좋은 이스트를 더 싸게 살 수 있으니까, 다음에 내려올 때 그것을 사오겠다고 말하는 것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저 기분좋은 얼굴로 바라보고 계신 것이 나와의 인연을 아버지도 상당히 좋게 보고 계신 듯 했다.



"좀 더 자지?"

"아니요. 충분히 잤어요. 다 하셨어요?"

"어. 증편기에 넣고 찌고 있으니까 포장만 남았다."

"성림씨, 대전에는 몇 시까지 가야 해요? 늦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10시 반까지만 집에 도착하면 돼요."

"그래요. 엄마, 떡 좀 싸갈 것도 있어요?"

"그럼. 씻어라. 성림이도."

"네. 어머니."



어머니가 찾아주셨는지, 동생의 트레이닝 복을 입은 성림씨는 자기 체구보다 조금 많이 큰 트레이닝 복이 헐렁해서, 그렇지 않아도 작은 체구가 더 작아 보였다. 성림씨가 올라가고 난 엄마에게 생각을 해 보겠다는 말을 했고, 아버지도 성림씨가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밝아서 좋아보이더라는 말을 했다. 쪄진 증편을 찬공기가 닿는 곳에 둬서 식혀놓고는 창현 형님의 국밥 집으로 향했다.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의 성림씨에게 내가 국밥집을 하는 아버지의 절친한 동생이 있으며, 내가 오는 날엔 늘 아침을 거기서 먹는다는 말을 해줬다.



국밥집은 여전히 성업중이었다. 아직 이른 새벽인데도, 예약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빈자리가 전혀 없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대여섯은 됐다. 우리 식구가 들어가서 예약석에 앉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약 자체를 받지 않는 형님의 국밥집에서 특별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불평들이었지만, 아버지도 나도, 엄마도 이런 상황에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형수님이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아이고, 갱민이 왔나. 이적지 기다렸데이. 누고? 색시가?"

"경민이 빌라에 같이 사는 아가씨. 우리 딸 삼을라고."

"에이. 보기에도 딱 어울리는데요. 뭘. 이쁘게 생겼네. 잠시만 기다리시소."



찌르르 가슴을 옥죄는 고통과 함께 성림씨의 마음이 다시금 들리기 시작했다. 성림씨는 두려워 하고 있었다. 만난 지 이제 사흘 째인 나를 이미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내가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했고, 절절한 그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해졌다. 겪어 본 고통이지만, 겪어도 익숙해지지는 않을 그런 고통이었다.



내가 숨을 쉬지 못하고 식은 땀을 흘리면서 한쪽 가슴을 부여잡자 엄마도 아버지도 성림씨도 놀랬는데, 성림씨가 놀라서 생각을 멈추자 순식간에 고통이 사라졌다. 숨을 몰아쉬면서, 난 괜찮다는 말을 했다. 혈압이 있으신 엄마는 내가 관상동맥쪽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대전에 올라가자마자 병원에 가보라는 말씀을 하셨고, 난 그래봐야겠다는 말을 했다. 바쁜 시간엔 주방에서 빠져나올 틈이 없는 형님이 직접 트레이에 국밥과 아침에는 누구도 먹지 않을 기름기가 도는 수육을 대자로 가져다 놓으시면서 내내 성림씨의 얼굴을 살피고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는 이따가 들르겠다는 말을 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가셨다.



국밥도 수육도 맛있었다. 식은 증편을 포장해서 차에 싣고는 성림씨와 대전으로 올라왔다. 며칠을 계속해서 봤더니 성림씨가 왠지 익숙해져서 대화가 편했다. 성림씨는 아침에 먹었던 국밥이 맛있었는지 내내 칭찬을 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영동쯤을 지날 때쯤 성림씨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는 괜찮습니다. 오라버니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아침에 밥 기다리다가 오라버니가 아파했을 때, 내 진심을 아셨을거라 생각해요. 괜찮아요. 내가 누구에게 사랑받을 자격없는 여자라는 걸 나도 잘 압니다. 괜찮습니다. 진짜로. 그저 지금처럼 대해 주시면 좋겠어요."



진심이라는 것은 진짜로 큰 무기가 된다는 것을 난 또다시 절절히 느껴지는 고통속에서 깨달았다. 엄마가 말했던 상대방의 진심을 아는 것이 삶에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알았다. 속일 수 없는 큰 사랑의 고통 속에서 난 운명적으로 이 여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렇게 결정해 버렸다. 차를 갓길에 세우고 성림씨의 어깨를 잡았다. 놀라서 나를 보는 성림씨에게 말했다.



"나도 내 마음을 성림씨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보여줄 수 없으니 그냥 말로 말할게요. 그런 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요. 성림씨는 내 눈 앞에 있는 지금의 성림씨고, 나는 성림씨의 눈 앞에 있는 나니까요. 인연이란 거 운명이라는 거 믿지 않았는데요. 우리는 운명 같아요. 잘해봐요. 우리."



성림씨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대전으로 올라가는 동안 난 기어를 바꿀 때를 빼놓고는 내내 성림씨의 손을 잡고 있었고, 성림씨의 방안에 떡상자를 내려놓고 돌아서서 내 방으로 와서도 성림씨의 아기같이 작은 손의 온기가 내 손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게로 나가서 일을 하면서도 내내 성림씨 생각을 했다. 냉장고에 들어가서 맥주랑 음료수를 채우면서도 별로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주문을 하고, 과자랑 냉동식품 유통기한을 점검을 하고서, 1 플러스 1 행사의 커피를 사서, 하나는 아르바이트 생 진하를 주고서 다른 하나를 타서 밖의 파라솔에 앉아 마시는데, 익숙한 빨간 경차가 서더니 지원이가 내려서 내 앞에 앉았다.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알려주려고 했는데. 재환이 문제는 정식이에게 내가 이야기 했다. 걱정할 것 없어."

"내 전화 수신거부 했더라. 왜 그래?"

"그게 좋지 않겠어?"

"그렇게 까지 해야 해? 왜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아?"

"이미 결정이 된 거잖아. 네가 결혼하는 것. 그러면 정리가 깨끗한 게 좋잖아. 니 입장에서도."

"그 년 때문이야? 저번에 그 촌스런 여자?"

"어, 나도 결혼할거야. 그 여자랑."

"왜? 나 때문에? 내게 보여주려고?"

"아니, 운명 같아서."

"그러지 마. 그리고 어떻게 그러냐. 언제는 내가 아니면 세상이 의미없다더니."

"그럴 때도 있었지. 그래,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데? 들어줄게.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봐. 결혼을 앞둔 네가 헤어진 지 한참이나 지난 나를 붙잡고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맞지 않는 걸 알았어. 재환씨 밀이야. 나랑 맞지 않아."

"뭐가?"

"거의 대부분의 부분에서 맞지가 않아. 나 오빠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졌어."

"맞지 않는 사람끼리 맞춰가면서 사는 게 결혼이야. 맞춰가며 살아."

"왜 그래야 해. 오빠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결혼을 먼저 깨고 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네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판사 남편은 가지고 싶고, 그 남편은 네 성미에 맞지가 않고, 남편은 그 놈으로 하고, 난 잘 맞춰주는 세컨드로라도 가지고 싶은 거야. 뭐야."

"예전에 헤어질 때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해? 기다리겠다며. 언제든 내가 돌아가고 싶을 때 뒤를 돌아보면 오빠가 있겠다며. 그 말은 다 거짓말이야?"

"그만 하자. 머리만 아프다. 여하튼 정식이 문제는 내가 해결했으니까, 넌 걱정하지 말고. 이제 정말 그만 보자. 그러는 게 좋겠다."

"아니. 봐야 할 거야. 빠른 시간 내에."



뭔가 독한 눈빛을 날리고 떠난 지원이를 보면서, 성림씨가 보고 싶어졌다. 홈플러스 문화센터에 가서 그녀의 강의를 확인했다. 성림씨는 일주일에 두 번 강의를 했는데, 하나는 맛있는 도시락 강좌였고, 다른 하나는 화요일 저녁에 하는 제과제빵 강의엿다. 도시락 강의는 재료비까지 6마원이었고, 제과제빵은 3만원이었다. 나는 둘 모두를 신청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부족한 잠을 잠시 잤다. 운전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데, 이틀 내내 오랜 시간 운전을 했더니 몸이 지쳐버렸던 것이다. 더구나 한번씩 몸을 옥죄어오는 고통도 상당한 피로를 동반했다. 몸이 피곤했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깨고 났더니 카톡이 몇 개나 와 있었다. 확인해 봤더니 정식이였다. 정식이는 성림씨와의 저녁 약속을 궁금해했다. 어제 말을 했는데, 내가 잊은 거였다. 성림씨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혹시나 몰라서 문자를 남겼다. 연락을 남기고 20초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성림씨. 어디세요?"

"오라버니, 전 일을 하고 있어요. 한남대학교 앞의 편의점이에요."

"네?"

"무슨 일이세요?"

"아, 저녁 때 시간 괜찮으신가 해서요. 저녁에 친구랑 만나기로 했는데, 성림씨 보고 싶대서요."

"아, 괜찮아요. 다섯시면 퇴근이니까, 전 여섯 시 정도부터는 집에 있을 거예요."

"네. 알았어요."



가게로 가면서도 내내 왜 그녀가 편의점에서 일을 하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녀는 문화센터의 강사였다. 그 자리에 아무나 써주는 것은 아닐테니 어느정도 경력도 실력도 있을 터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편의점보다는 빵집을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다. 정식이와 전화해서 시간약속을 잡고, 아르바이트에게 맡겨도 될 정도로 가게 일을 모두 마쳐놓고서는 집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청소를 좀 하고서 집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눌러서 나갔더니 깔끔하게 차려입은 성림씨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익숙하게 집으로 들어와 본인의 지정석이라도 되는 양 식탁의 의자에 앉은 성림씨에게 마실 것을 줄까 물었더니 괜찮다해서 그 앞에 앉아서 궁금했던 편의점일을 물었더니, 의외로 간단히 대답했다. 돈을 거의 쓰지 않아서 돈을 버는 일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지만, 혼자 지내는 것도 싫고, 또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문화센터의 강의는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아 하는 일이지만, 제과제빵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일을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아서 그냥 깔끔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한다는 성림씨에게 난 우리 편의점에서 일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성림씨는 당장에라도 저쪽 일을 정리할 수 있다면서, 내가 보는 앞에서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당장 그만두겠다는 전화를 했고, 다음 아르바이트 생을 구할 때까지 며칠만 기다려 달라는 사장에게 여태까지 일한 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깝지 않아요? 그 돈?"

"아니요. 아깝지 않아요. 아까 오라버니 전화를 받고 나서요. 일이 안되더라고요. 계속 오라버니 생각이 나서요. 왜 친구가 보자는 자리에 날 데려갈까 그 생각만 들고요. 가서 잘 보여야 하는데 그런 생각만 들고..."

"그래요. 그럼 내일부터 나랑 일해요."

"오라버니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은요?"

"이번달 말까지는 두명을 쓰면 되죠. 뭐."

"역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은 다르시네요. 그러면 저는 이번 달 말까지는 급료를 주지 않으셔도 돼요. 전 오라버니만 볼 수 있으면 되니까요."

"그래요. 그러면. 어차피 내 돈이 성림씨 돈이니까요."



성림씨는 그 말에 몹시 행복해했다. 난 예전부터 여자의 이런 얼굴을 좋아했었다. 꽃처럼 활짝 피어나는 여자의 얼굴. 나로 인해 행복해 하는 얼굴. 그래서 나는 떠나는 지원이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약속장소인 둔산으로 일찍 나갔지만,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혔다. 막힌 차들을 뚫고 겨우겨우 도착해서 근처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투썸플레이스에 들어가서 차를 마셨다. 정식이가 뭔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들어와서 나와 성림씨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내 옆에 앉자마자 성림씨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야, 이경민, 너 지원이에게 뭐라고 했냐? 결혼 깨라고 했냐?"

"아니.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냥 너 결혼하니까 다시는 보지 말쟀지."

"씨발, 아, 재수씨 죄송합니다. 버릇이 돼 놔서. 변국장이 보자고 해서 들어갔더니, 난리가 났더라. 지원이가 결혼을 깨겠다고 했다는데. 너랑 만난다고 하고 나갔다 들어와서. 아무래도 안되겠다면서."



두근두근



여태까지의 고통과는 확연히 다른 고통이었다. 잠시잠깐이었지만, 가슴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고, 난 결국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포비아 - 공포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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