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으로 놀자 - 1부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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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태준은 수민과 함께 집으로 들어와 먼저 시계부터 보았다. 목재로 된 커다란 괘종시계의 바늘은 오후 7시를 막 지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집엔 적막만이 흘렀다. 부모님은 10시나 돼서야 퇴근하시고, 민아는 아직 태권도장에 가 있을 시간이다. 어린 나이에도 실력을 인정받은 민아는 사범의 보조를 하느라 가끔은 부모님보다 더 늦게 들어오기도 한다. 식대비와 일당마저 받는다고 하니 태준으로선 놀라울 따름이다.



“오빠… 나 배고파. 뭐라도 먹자. 식욕은 있어?”

“아, 고마워. 잠깐만 기다려 봐.”



수민은 태준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안 그래도 허술한 아침 한 끼 외에는 기절해 있느라 아무것도 먹은 게 없던 태준은 당장 핸드폰을 꺼내 초밥 전문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아, 네. 특상초밥 2인분으로요. 네.”



태준이 전화를 끊자, 수민은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특상초밥? 오빠, 그거 1인분에 2만원씩 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왜? 돈은 있어?”

“응. 있지. 오늘 수민이가 병문안 와 준거 고마워서 내가 사는 거야. 같이 맛있게 먹자.”

“우와아! 오빠 최고!”



자신의 품에 와락 안겨드는 수민을 같이 끌어안아 주며 태준은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주머니를 더듬어 아까 택시기사에게서 뜯어낸 20만원을 만져본다. 실물이다. 꿈이 아니다.



수민에게 적당히 TV라도 보고 있으라고 말해놓고 태준은 자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거울에 자신의 눈동자를 비쳐보았다. 동공이 검붉은 빛으로 변해있었다. 아까 꿈에서 보았던 ‘가이드’에 따르면, 이건 ‘능력’을 얻게되는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말했었다. 크게 티는 나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마치 외국인의 눈 같다.



“최면술이라…”



TV나 잡지에서만 보던 능력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 태준은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아까 택시기사에게 한번 시험해서 성공한 실적은 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시험해 봐서 확신을 얻을 필요가 있었다.



태준은 자기 방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파트 3층에 산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했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테스트 해 보기엔 편리하기 그지없다. 이도저도 아닌 높이가 지금 그에겐 너무 만족스러웠다. 마침 태준의 눈에 먼 곳에 지나가는 정장 차림의 몸이 작달만한 소녀가 비쳤다.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었는지 무전기인지 전화기인지 모를 무식하게 생긴 통화기기를 귀에 대곤 누군가와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다. 태준은 눈을 부릅뜨곤 소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곧 그녀의 마음속 목소리가 그에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아~ 지루해. 도대체 사람이 눈치가 좀 있어야지. 억지로 웃어준다는 걸 진짜로 모르는 거야? 재미도 없는 얘기를 대체 몇 번 씩이나 되풀이해서 말하는 거냐고. 아, 정말 안 들리는 척 끊어버리고 싶다.’



“핫…! 파하핫!”



상상치도 못한 내면에 태준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가 얘기를 계속 되풀이 하는 건 아마 네 연기가 너무 리얼하기 때문일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생각보다 쉽군. 독심술이란 건.”



‘가이드’에 따르면 실제로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했지만, 한 번의 시도만으로 자신은 모든 기술을 멋지게 성공해 내었다. 태준은 그 사실에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게 ‘가이드’가 거짓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까지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그는 한껏 물이 올라 마음껏 자아도취 하고 있으니까. 설령 중년 남성, 아니 정체 모를 그 박사가 다시 온다 해도 그를 말릴 순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거의 태준의 시야 너머로 사라져 가던 소녀는 무슨 일인지 다시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다시 돌아오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유없는 본능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최면에 잘 걸린다고 ‘가이드’는 말했었다. 그리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은 대개 그런 사람들 뿐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태준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어 소녀가 위쪽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가이드’는 최면술에는 순서가 있다고 말했다. 간단한 동작을 취하게 만들 때는 그저 마음속으로 명령하면 되지만, 복잡한 행동이나 내면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절차를 따르는 것이 불가결한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눈 마주치기’.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든 상관없다. 시술자가 최면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시술자에게서 특수한 뇌파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뇌파는 시선을 피 시술자에게 전달된다, 고 한다.



태준과 눈이 맞은 순간 소녀는 딱 하고 멈추었다. 그리고 몇 초간 굳어 있더니, 갑자기 통화기기에 대고 악을 쓰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약간 흐릿해진 듯한 시선은 태준이 아닌 통화기기에 가 있다.



“재미없다고! 이제 그만 하라고! 미친놈도 아니고, 지겨워 죽겠어. 정말!”



그리고 소녀는 통화기기를 대뜸 땅바닥에 집어던져버리곤, 하이힐로 그것을 마구 밟아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는 듯 그녀는 씩씩거리며 날뛰다가, 곧 온몸에 힘이 다 빠진 듯 터덜터덜 다시 가던 길을 돌아가기 시작한다.



“큭, 크크큭. 큭큭!”



2차 실험의 결과는 놀랍도록 성공적이었다. 이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태준은 광인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대었다. 이 능력만 있으면 자신은 뭐든 할 수 있다. 신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당연히 자신이 악마가 되는 길을 택할 것을 알기에 나오는 웃음이었다.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지금까지 원초적인 이유로 차별, 괴롭힘을 당해왔으니까 이제 남은 것은 그 원초적인 차별, 괴롭힘을 세상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태준은 자기 방문을 살짝 열고, 쇼파에 앉아 하잘 것 없는 TV쇼를 보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 수민을 정욕에 불타는 눈으로 훔쳐보았다. 수민이 웃을 때 마다 짧은 반바지 밑으로 다 드러난 새하얗고 탱탱한 그녀의 허벅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보통 초등학생의 얇기만 한 매력이라곤 전혀 없는 허벅지와는 다르다. 어느정도 살집이 있고, 윤기도 있고, 그러면서 결코 굵지도 않은 이상적인 허벅지다. 태준은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 나서 거실로 나갔다. 곧 있으면 초밥이 오니, 그 전에 미리 사전작업을 해 두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다.



“오빠. 초밥 언제 와?”

“모르겠어. 조금 있으면 온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것보다, 잠깐 내 눈 좀 똑바로 봐봐.”

“으응?! 갑자기 왜? 싫은데?”



수민은 소녀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태준에게서 눈을 돌렸다. 태준은 아차 싶었다. 1단계가 되지 않으면 심층심리를 건드릴 수가 없어진다. 그는 극도로 흥분하고 있어, 강제로 염파를 쏘면 수민의 고개 정도는 가볍게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억지로 얼굴을 붙들기 위해 수민에게로 천천히 다가가는 태준의 뒷모습은 강간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휴, 역시 난 연기는 잘 못하나봐.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영문 모를 수민의 말에 태준은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손만 뻗으면 수민의 얼굴을 잡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이거, 짜잔. 오늘 오빠 생일이잖아.”

“아…”



수민이 등 뒤에서 슬쩍 꺼낸 것은 동네 빵집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케이크였다. 태준은 그제야 중년 남성이 아침에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생일 축하한다. 내 아들아.」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달력을 쳐다보니 과연 오늘은 자신의 생일이 맞았다. 누구하나 챙겨주는 사람이 없기에, 무엇보다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조차 혐오하고 있던 그였기에 생일 같은 건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턴 의식한 적도 없었다. 태준은 자신의 가슴에 꾹꾹 밀어붙여지는 케이크 상자를 멍하게 받아들었다. 무거웠다. 마음만 먹으면 5분만에 다 먹어치울 수 있을 만큼 작은 케이크였지만, 이상하게 그것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고작해야 만원 남짓 하는 케이크겠지만 이상하게도 태준의 눈에는 그것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로 보였다. 태준은 핑 도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곤 말했다.



“고마워. 수민아.”

“에, 에이. 뭘! 그냥 용돈이 조금 남아서 샀어.”



수민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조금 붉히곤 그제야 태준을 쳐다본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에 감동받은 듯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태준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왜 언니는 오빠를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오빠가 가끔씩 이런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보인다는 걸 언니는 알까.



“그리고, 미안해. 수민아.”

“엥? 뭐가…?”



새삼스럽게도, 수민은 자신을 쳐다보는 오빠의 눈동자가 조금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태준의 얼굴에선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인간미 넘치는 표정이 싹 사라져 있었다. 수민은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려 하는 듯한 기류를 감지했지만, 그녀는 어떤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사고회로를 짓눌러 부숴버리려는 듯한 극심한 피곤함이 갑자기 그녀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수민은 자기도 모르게 눈꺼풀을 한번 닫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아… 오빠…”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까와 똑같은 광경.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케이크 상자를 든 채 감동받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기 오빠다. 눈꺼풀이 깜빡 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0.4초라는, 과학시간에 배웠던 잡학을 수민은 어렴풋이 떠올렸다.



시간의 공백을 느꼈다. 초등학생인 수민이 지금 자신이 느끼는 위화감을 ‘시간의 공백’이라는 단어로 개념화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웬일인지 아침 6시에 깨어버려, “어차피 아직 한참 남았는데 조금만 더 잘까.” 하고 눈을 붙였다가 뜬 순간 시곗바늘이 8시를 가리키고 있어 깜짝 놀랐던 일을 떠올리곤, 수민은 고개를 돌려 거실 벽에 붙어있는 괘종시계를 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7시 즈음을 가리키고 있던 시곗바늘이 어느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다.



“왜 그래, 수민아?”

“아니… 오빠, 나 혹시 잠깐 잤었어?”

“아닌데.”



너무나도 무감정한 목소리에 수민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태준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태준은 빙긋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몇 시간 동안 가만히 굳어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잠에서 덜 깬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 하는 수민에게 태준은 말했다.



“일단, 빨리 가자. 내 생일파티 시작해야지.”

“뭐…? 생일 파티?”



수민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태준은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딱히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태준의 힘에 질질 끌려 거실에서 안방으로 끌려들어갔다.

태준이 문을 열자마자 펑, 펑 하는 귀를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폭죽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어두컴컴했던 방에 불이 들어오자 그곳엔 처음 보는 여자아이들이 몇 십 명이나 모여 있었다. 원래 놓여 있어야 할 부모님의 퀸 사이즈의 침대나 화장대 같은 가구들은 어디로 치워졌는지 허한 공간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에 수북이 종이다발들을 뒤집어쓰고도 여전히 상황파악이 안 된 듯한 얼굴의 수민을 보고 태준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방 안에 모여 있던 여자아이들도 따라 웃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수민만 빼고.





















***



정장차림의 소녀는 전조등 없이는 길도 잘 보이지 않는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뭐가 그리 화가 나는 건지 미간에 내 천자가 새겨질 정도로 인상을 구기고 있다.



“학생이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놀면 안 되지.”



등 뒤에서 들린 소리에 소녀는 고개를 홱 하고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어둠속이라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새하얀 연구복만이 눈에 들어온다.



“감시대상에게 오히려 당하다니. 아니, 당한 것도 아니지. 이건. 넌 그냥 제 3자로서 말려들었을 뿐이야. 부끄럽지도 않나?”

“시끄러워! 죽어라! 이 재미없는 인간!”



아직 최면이 덜 풀린 건지, 모래 바닥에 놓여 있던 장난감 모종삽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신의 부하를 보고 박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그 순간 정장차림의 소녀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아온다.



“아, 박사님…?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거…”



소녀의 목소리는 픽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에 의해 가로막혔다. 와이셔츠의 한 구석이 잉크라도 떨어뜨린 듯 붉게 물들어 간다. 박사는 왼손으로 쥐고 있던 권총에서 소음기를 제거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녀는 그대로 모래바닥 위에 얼굴부터 쓰러져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박사는 쭈그리고 앉아서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지금 내가 쓴 건 단순한 권총이지만, 총알은 조금 다르지. 내가 개발한 특제 물질 분해 탄을 썼어. 넌 10분 쯤 있으면 흙 비슷한 물질로 분해 될 거야. 내일 아침이 되면 동네 꼬맹이들이 네 시체를 갖고 흙장난을 할 거란 말이야. 알겠어?”

“억, 커헉. 콜록.”



겨우겨우 고개를 들어 박사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진창이다. 게다가 입에선 피까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절로 눈물이 핑 돌만한 가련한 모습이었지만, 박사는 소녀에게서 매몰차게 등을 돌려 놀이터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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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 조절 실패입니다 ㅜ_ㅜ 죄송합니다... 다음편에서야 말로,,,



그리고 많은 응원과 관심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새벽에 피곤한 상태로 써내 오탈자 투성이고, 가끔씩 1인칭 3인칭이 오락가락 하고 있습니다 ㅜ_ㅜ 1부를 끝마치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 한번 전체적으로 수정해보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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