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으로 놀자 - 1부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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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그게 무슨 소린데요? 애초에 당신은 대체 누구야?!”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연한 표정이다. 태준만이 애가 타는 듯 얼굴을 붉혀가며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시간은 7시 50분. 서둘러 등교하지 않으면 교문에서 학주에게 잡혀 흠씬 두들겨 맞을 시간이지만, 이런 이상한 사람을 남겨두고 집을 비울 수는 없다. 애초에 이 사람은 어떻게 우리 집 디지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걸까. 하고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왜냐하면 여기는 내 집이니까.”



중년은 능청스럽게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했다. 태준은 깜짝 놀라 양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피식 웃으며 새하얀 연구복 안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는 중년. 용도를 알 수 없게 생겨먹은 단단해 보이는 금속제 구체를 태준에게 들어 보이며 그는 말했다.



“이거. 내가 개발한 독심 기계. 고맙네, 좋은 실험 대상이 되어줘서.”

“…”

“도저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딱히 이 기계를 쓰지 않아도 자네 표정만 봐도 알겠군. 하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까지 말하고 중년은 손에 힘을 주어 그것을 부숴버렸다. 고작 중년의 악력으로 부서질 재질로 만들어 졌던 것일까, 아니면 중년이 깜짝 놀랄 만한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방금전까지 기계였던 잔해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다.



“신체 강화 약품 테스트도 완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곤, 중년은 드디어 본론을 말하려는 듯 양 손을 모아 자신의 가슴 앞에서 깍지를 꼈다. 하지만 태준은 여전히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TV를 보고 있을 때와 똑같은 눈이다.



“잘 들어. 김태준.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미래에서 온 너 자신이다. 그리고, 넌 네가 생각하는 네 부모님들의 자식이 아니다. 저 사진을 봐. 어딜 봐서 저런 부모 아래에서 너 같은 게 태어날 수 있지?”



중년 남성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벽엔 결혼기념일 때 찍은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가 걸려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부부의 모습은 물론 한창 때에 비해서는 조금 퇴색해 있지만, 여전히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우 저리가라 할 정도의 외모다. 요모조모 뜯어봐도 태준의 부모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 당신이 내 아버지라고? 그럼 뭐야, 당신이 내 어머니랑…?”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게 아마 맞을 거다. 19년 전에 나는 네 어머니를 강간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은 싹 지워버려 너를 진짜 아들로 생각하게 만들었지.”



그는 여기서 한 박자 쉬곤,



“과거의 내가, 즉 ‘네’가 어떤 인생 경험을 통해 성장하여 나같이 뛰어난 박사가 되었느냐 하는 것 까지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결론만 말하지. 난 여러 가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타임 머신’을 발명하게 되었다.”

“…”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야. 지금 이 시대의 과학 이론으로는 뭐라 설명할 수도 없는 엄청난 발명품들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내었지. 타임 머신 따위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 밖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즈, 증거를 보여줘! 겨우 그런 것 가지고 네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네가 나랑 좀 닮았다는 이유로, 어쩌다가 한 번 내 마음을 맞췄다는 것 가지고 그런 터무니 없는 사실을 어떻게 믿어!”

“증거라.”



중년은 태준의 절박한 외침에도 여전히 태연하다. 그는 또다시 느긋하게 연구복 안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핑크빛 액체가 든 작은 주사기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그걸 보고 태준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주사기를 그에게 던졌다.

주사기 바늘이란 ‘가늠’과 ‘예리함’이 중시되는 물건이다. 그래야 주사할 때 환자의 혈관이나 근육에 나는 상처가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바늘을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그것도 옷 위를 향해 던졌으니 당연히 바늘이 부러지거나 주사기가 튕겨나가거나 해야 정상이지만,



“으아?!”



주삿바늘은 태준의 와이셔츠를 뚫고 그의 살에 깊이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주사기를 꾹 누르듯, 주사기 내부의 공기가 압축되어가며 분홍빛 액체가 태준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온 몸을 타고 도는 작열감과 그와 동시에 밀려오는 노곤함이 그를 무릎 꿇게 만든다. 마지막 남은 일말의 정신으로 태준은 벌러덩 뒤로 넘어진다.



“원래는 주사 맞기 싫어서 도망가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던 거지만… 너무 잔혹하다는 이유로 개발이 중지되었지. 이렇게도 쓸 수 있구먼.”



중년은 입에 거품을 문 채 기절해있는 태준을 내려다 보았다.



“생일 축하한다. 내 아들아. 그건 아버지로서 주는 선물이다. 그건 머나먼 미래에서도 금지되어 있는 기술을 네 몸에 일깨워줄 거다. 그리고 그 선물을 어떻게 쓰냐는 네 손에 달려있다.”



그 말만을 남기고 중년은 홀연 듯 집 안에서 사라졌다. 다시 미래로 돌아간 건지, 아니면 더 먼 과거를 향해 여행을 떠난 건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



태준이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수업이 평소보다 일찍 끝나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온 수민이 거실에 뒤로 쓰러져 있는 태준을 발견하곤 울며불며 119에 신고를 한 것이다.



“으음…”

“오빠! 오빠아아아… 흑흑…”



수민이 울상이 된 얼굴로 누워있는 태준에게 안겼다. 그제야 태준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수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가 수민을 보고 훈훈한 미소를 짓다가, 뒤늦게 태준의 얼굴을 보고 급히 고개를 돌린다. 못 볼꼴이라도 봤다는 표정이다. 태준은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그곳엔 민아나 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몸이 개운했다. 불의의 기습을 받고 기절했다 깨어난 것 치고는 꽤나 몸 상태가 괜찮다고 그는 느꼈다.



딱히 큰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므로, 의사는 바로 퇴원절차를 밟아주었다. 앰뷸런스나 기타 비용은 부모님 앞으로 청구되었다.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시면 뭐라고 말해야할지 막막해져 태준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수민은 아직도 태준의 몸이 걱정되는지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괜찮아? 괜찮아?” 라며 재잘재잘 떠든다. 태준은 수민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주고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



“어서오십쇼! 어디로 모실까요!”



지나치게 활발한 택시기사로군, 하고 태준은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한 뒤에 기사에게 목적지를 불러주었다. 집 가까이에 큰 병원이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엄청난 요금이 나왔을 것이다.



“요즘 날씨가 정말 덥지요?”

“아, 예예.”



택시기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끝까지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 생각은 하지 않아, 태준의 온 몸은 곧 땀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수민은 그 나이대의 애들답게, 창문 너머로 빠르게 흘러가는 바깥 경치를 구경하는데 바쁘다. 그다지 더워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태준은 헛기침을 두어번하고 나서,



“저기, 죄송한데 에어컨 좀 틀어주시면 안될까요?”

“아이고,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에어컨이 고장이 나서요…”

“아…”



할 말이 없어진 태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맘 같아서는 앞좌석으로 뛰어 들어가 에어컨 켜는 버튼을 눌러보고 싶었지만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기사는 싫증을 잘 내는 스타일인 듯, 수시로 라디오의 채널을 돌리고 있다. 태준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저러다가 실수로 에어컨 버튼이라도 누르면 좋겠다고 ‘강하게’ ‘염원’했다.



“아차!”



기사의 놀란듯한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차내의 에어컨이 우웅 하는 낮은 소리를 내며 차가운 바람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기사가 태준을 쳐다본다. 기사는 멋쩍게 웃었지만, 태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 하하하… 이게 바람이 잠깐 나왔다가 갑자기 물이 뚝뚝 떨어지거든요… 빨리 꺼야지…”

“물 좀 맞아도 좋으니까 끄지 마요. 그리고 빨리 운전이나 하세요.”

“…”



창문이 다 닫힌 택시 안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수민만이 분위기 파악을 못한 듯 “오빠, 아까 에어컨 고장 났다고 안 했었어? 왜 지금은 나오는 거야? 고쳐진 거야?” 라고 천진난만하게 떠들고 있었다. 기사는 말없이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올렸다.

택시는 곧 태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수민이 먼저 내리고, 태준이 요금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꺼내려 하는 순간 기사가 그것을 제지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만… 에어컨 끄면 돈이 얼마나 절약된다고, 양심을 팔고 말았습니다… 이번 요금은 안 받겠습니다. 제 사죄의 뜻입니다.”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기사. 그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태준은 냉정하게 말했다.



“정말 잘못하셨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예. 죄송합니다.”

“그럼 사죄의 뜻으로 뭐라도 해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 당신 지갑안에 들어 있는 전 재산이라던가…”



태준은 놀랍게도 기사에게서 돈을 더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평상시의 그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다. 끝까지 요금을 거부하는 기사에게 돈을 억지로 쥐어주고 도망치면 도망쳤지, 결코 이런 협박을 하지는 않는다. 항상 피해만 보며 살아온 태준에게 그런 배짱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의 찢어진 눈엔 뭔가 알지 못 할 자신감이 깃들어 있었다.

기사는 잠깐동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 갑자기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얼굴 가죽에 실을 매달아 놓고 위에서 휙 당긴 듯 한 어색하고도 갑작스러운 표정변화였다.



“예, 예! 아무렴요! 여기 제 지갑입니다. 마음껏 다 가져가시죠.”



태준은 그 지갑에서 돈을 모조리 빼낸 뒤 지갑을 기사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철썩 하는 가죽과 가죽이 부딪히는 소리. 하지만 기사의 비굴한 미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태준은 피식 웃으며 택시에서 내렸고, 택시는 유턴을 해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손에 쥐어진 20만원 남짓 되는 돈. 이것이 중년 남성이 그에게 준 ‘힘’ 으로 올린 첫 수확이었다.











***



골목길에 숨어있던 정장차림의 소녀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태준이 수민의 손을 잡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소녀는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꺼낸다.



“박사님, 피 실험체는 '벌써' 능력에 눈을 뜬 듯 합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 누가 만든 약품인데.』

“아, 아뇨… 박사님의 약품의 성능을 의심하는 게 아니고…”

『알고 있네. 어떻게 저 소년이 자신이 각성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냐는 말이지? 농담 한번 해 봤네. 약품에 조금 손을 봐서, 기절하고 나면 내가 만들어 놓은 ‘가이드’를 꿈속에 나타나게 한 것 뿐이야. 다행히 저 소년은 평소에도 공상과학 서적을 즐겨 읽고 있어서 그런지 이 상황을 한 번에 수용해 버리더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쉽게 납득할 수 있다는 것과 똑같은 거지.』

“아아…”

『어찌됐건 자네는 저 소년을 계속 감시해주게. 눈에 띄는 짓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적당히 하루에 몇 시간씩 그의 행동을 기록해서 내게 보내주기만 하면 되네. 그가 무슨짓을 하든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야. 알겠나?』

“예!”





박사는 새하얀 방에 홀로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계획이 생각대로 잘 흘러가고 있는 모양인지 그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새하얀 의자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았다. 추악한 얼굴이다. 몇 번을 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얼굴 가죽을 뜯어내 바닥에 던져버렸다.



“저 소년은 흡수력이 빠르고 재미있지만, 그래도 바보로군…”



누구 하나도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마치 무대 위에 오른 배우가 독백을 하듯이 중얼거린다.



“과거로 왔던 내가 그의 모친과 관계를 맺어서 그가 태어났다면. 그래, 내가 진짜 그의 부친이라면, ‘원래의 나’는 어떻게 태어났지? 그 모순은 넘기고서라도, 어떻게 같은 시간대에 그가 ‘복수’로 존재할 수 있지? 싸구려 평행우주이론이라도 들먹일 생각인가? 보아하니 소년은 날 완전히 믿고 있는 모양이던데.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나로서야 피 실험체가 마구 날뛰어주는 편이 편하지, 라고 그는 덧붙이고, 방안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새하얀 방에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흉측한 얼굴 가죽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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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으셨나요? 사실 제가 SF에는 좀 심하게 약합니다 ㅠ_ㅠ

프롤로그 격인 1~2부 였습니다. 다음부턴 본격적인 ****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기대는 조금만 해 주세요 ㅎㅎ.

많은 관심과 독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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