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여자

페이지 정보

본문

메일을 보내온 사람은 [오리오리]였다.





줌마넷에 등록된 메일이 네이버였었나 보다. 사실 줌마넷에 기웃거렸던 것은 교양 수업 인터넷커뮤니케이션의 이해의 기말고사 대체 레포트와 내가 가입한 벤처 동아리에서 나와 친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인터넷 마케팅 벤처를 차리네마네 하고 있었던 이유 때문이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둘다 별로 안좋게 끝나버렸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A깔아주기로 유명한 수업인데 B, 인터넷 마케팅 벤처는 때마침 유행을 타기 시작한 블로그 열풍에 계획 단계에서 좌초. 그래서 학기가 끝나자마자 줌마넷은 내 관심에서 저만치 벗어나 있었기에 [오리오리]가 메일과 쪽지를 보낸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었다.



처음에는 누가 보낸건지도 몰랐다. 네이버 아이디는 [오리오리]가 아닌 다른 아이디-실명이 포함되어 조금만 구글링해도 누군지 알 수도 있을 법한 아이디-였다. 메일을 보낸 이가 [오리오리]인 것을 알아차린건 그녀가 보낸 메일과 쪽지의 내용 절반 이상이 자기가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걸린 정신병자인지 아닌지를 묻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줌마넷에 내가 글을 올렸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녀가 보낸 수많은 메일과 쪽지를 보고는 도저히 기억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었다.



백통이 넘었다. 거의 이틀에 한번꼴로 메일과 쪽지를 날렸던 셈이다. 메일함 정리가 불가능했다. 처음에야 그녀의 메일만 빼고 전체 삭제를 했지만 어느 정도쯤 되자 그녀의 메일이 한페이지의 절반 이상이 넘어갔다. 짜증이 났다. 단지 자신의 글에 답글을 달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스팸 수준으로 메일을 보내다니 분명 뭔가 이상한 여자였다.



스팸메일처럼 너무 많이 보내서 메일함 정리가 불가능해져 버린 짜증스러움을 견디고 그녀의 메일을 읽기로 한 것은 오직 한가지 이유였다. 그녀는 남자 두명이 두고 싸울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한마디로 그녀가 예쁠 것 같아서였다. 참 저렴한 이유였다.



처음 메일은 내가 글을 올린지 하루만에 보내온 것이었다.



제목:이봐요.

이봐요 제가 정신병자라는 건가요? 지금 아는 사람 아니라고 아무렇게나 막말 써갈기신거 같은데 너무 하신거 아닌가요?...중략...그따구로 살지 마세요.



그 이후로 거의 한달 가까이 비슷한 내용의 메일이 보내져왔다. 자신이 정신병-착한여자컴플렉스-가 있다고 한 나에 대한 비난과 자신은 멀쩡한 여자라는 항변. 대부분이 쪽지였고 짤막짤막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처음과는 약간 다른 변화가 있었다.



제목:저기요.

처음에 너무 화가 나 있어서 말을 험하게 써서 보냈네요. 죄송해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저는 전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본 적이 한번도 없고, 착한척 한 적은 더더욱 없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면 저같이 솔직한 여자는 드물다고 이야기해요...중략... 어쨌든 충고 해주신건 감사합니다.



여전히 자신은 정상적이다고 주장하지만 나에 대한 비난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 다음 메일에는 또 맹렬히 나를 비난하다가 그 다음은 욕해서 미안하다고하고. 한동안 나에 대한 비난이 있다없다하는 오락가락한 메일이 한참 이어졌다.



어느정도 나에 대한 비난이 거의 없어질 때 쯤에 그녀에게 큰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녀가 부자남을 선택하면서 헤어졌던 8년 사귄 남자친구가 외국으로 떠나게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거의 멘붕 상태였다.



제목:저 어떡해야 하죠?

제발 알려주세요. 지금 저는 어떻게 해야하죠? 오빠가 내일 떠난데요. 전화가 왔는데 오빠의 음성을 끝까지 들을 자신이 없어서 끊어버렸어요. 제가 전화받기 싫어서 끊어버린거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죠? 지금 다시 걸어야 할까요? 제가 지금 전화를 걸어서 오빠 전화 받기가 너무 슬퍼서 끊었다고 하면 괜히 착한척 하는 걸까요?



제목:너무 아파요

한동안 연락을 못했네요. 일하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왔어요. 가벼운 영양실조래요. 의사가 잘 챙겨먹으면 금방 나을거라는데 속이 매슥거려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요. 검사를 받아봤는데 소화기쪽엔 문제가 없데요. 혹여나 싶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정신적인 문제로 그럴수도 있다고 나와 있어요. 제가 진짜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건가요?



큰 심경의 변화 이후에 그녀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를 토대로 자신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단지 소화불량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일수도 있다는 네이버 지식인의 간단한 한 줄 때문에,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갑자기 ‘선생님’이 되어버렸다. 한동안 나는 갑자기 선생님이 되어 그녀의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고민 상담 상대가 되었다. 그렇게 한참 고민 상담이 이어지다. 드디어 마지막 메일, 내가 스펨메일인줄 알고 지워버린 메일, 불과 이틀 전에 보내진 메일이었다.



제목:도와주세요.

선생님. 제발 부탁이에요. 물론 바쁘신 줄은 알아요. 저에게 시간 할애하기에는 제가 하찮은 줄도 알아요. 그런데 제발 한 생명 살려주신다고 생각하고 제 질문에 답변 한줄만 해주세요. 제가 무슨 문제 인건가요? 제가 정신적으로 큰 병이 있는건가요? 너무 무서워요. 오늘은 그 맞선본 남자와 결혼문제로 상의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서 토할뻔 했어요. 그사람은 말로는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그 사람 눈은 제가 정신병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그런 눈빛이었어요. 저는 정말...제발 선생님. 제발...저 좀 살려 주세요.



짜증으로 시작한 그녀의 메일은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진진함으로 변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저렴한 이유에서 시작한 메일 읽기가 뭔가 고귀한 측은지심으로 변화되었다. 그녀가 보내온 메일과 쪽지들은 그녀의 심경이 6개월 동안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인간인 이상, 나로서는, 뭔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일을 보냈다.



[오리오리님 내일 만나죠.]







ps-와 메모장으로 쓰다가 너무 작은 글씨에 눈이 아파서 워드로 글씨 크기 좀 키우고 썼더니..이렇게 짧을 줄은 몰랐네요. 첫편은 완전 그냥 날려 먹고, 이번엔 분량 미숙...글 조절에 완전 실패한것 같네요. 이글을 클릭한 분들께 참...죄송하네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