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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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입대일까지 1주일 남았다.



일단은 기차를 탔다.

요즘처럼 2시간만에 서울 부산을 주파하는 기차가 아니라 역마다 서고, 더 빨리가는 열차를 앞세우기 위해 1~20분씩 기다리기도 하는, 정말 지겹기 그지 없는 기차였다.

차표는 대충 끊은 다음 누군가 내릴려고 일어서면 그냥 앉으면 그만이다. 다음 역에서 탄 사람이 표를 내밀면서 쳐다보면 다시 일어나면 그만이고..

졸다가 내릴곳을 지나쳐도 상관이 없었다.

차장이라고 부르는 여객전무가 있어 차표를 연장할 수도 있고, 이따끔씩 돌아다니는 차장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내린역에가서 돈을 더 지불하면 아무 상관이 없었다.

느리긴 했지만, 정말 편리하고 나이가 들수록 추억이 생각나는 것이 열차여행이다.



완행열차는 대부분 저녁 10시쯤 출발한다. 그리고 밤새 달려 부산에는 아침 8시쯤 도착한다.

400키로를 10시간 동안 달리는 셈이니 평균시속은 40키로, 물론 역마다 정차하기때문에 최고속도는 아마 5~60키로는 나지 않았을까 싶다.

역에서 잠시 내려 가락국수 한그릇 먹다가 혹시 열차가 출발이라도 하면 입에 물었던 국수를 후루룩 들이 삼키고 냅다 뛰어서 승강구 난간을 잡고 한쪽발을 올리고 매달려서 겨우겨우 올라타기도 했다.

10시에 용산에서 출발할 때 이미 만원이 된 열차는 영등포에 도착하면 더욱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고, 안양까지 가는 30여분 동안 잠잠해 지다가 한쪽 구석에서 서서히 통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조용한 노래 "작은연인들" "긴머리 소녀"같은 오르페지오 주법의 기타 선율에 한두명의 어색한 노래가 조용히 들린다.

하지만 두어곡 끝나고 나면 다른 학생이 기타를 넘겨 받아 자신의 18번을 연주한다.

이윽고, "오동잎 한닢두잎~~" 하는 노래가 시작되면 드디어 유행가가 시작되고, 리듬은 경쾌하여, 잠들었던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깨어나기도 하지만, 노랫소리도 무료한 열차여행을 심심치 않게 해 주는 묘미가 있었다.

이쪽 끝에서 한동안 노래가 이어지다가 레파토리가 고갈되었을 무렵, 반대쪽에서 또 다른 기타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기타에 간이 앰프를 장착한 소리다.

시끄러운 기차안에서 전자앰프 소리는 생생하게 울려퍼지며 양쪽에서 서로 경쟁하듯이 노래와 기타연주 경연을 한다.

한시간쯤 후, 수원역쯤에 도착하면, 두 팀은 한데로 뭉쳐서 아예 진을 친다. 입구쪽이 시끄러운 사람들이 주섬주섬 가운데로 자리를 피하고, 안양이나 수원에서 내린 좌석을 확보한 학생들이 진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시간정도 지나면 천안역이다. 충북선을 타는 사람들이 한참 내리고 나면 열차는 조금 한산해진다.

이제 학생들은 지쳤는지 조용해지고, 운좋게 옆자리에 혹은 마주보는 앞자리에 않은 사람과 친해지면 지나가는 홍익회 수레를 세워서 맥주를 두병사고 오징어 땅콩을 안주삼아 종이컵에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꽃을 피워간다.

한숨자고 나니 차안의 열기에 덥고 갑갑하여 출입문 쪽으로 나와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다.

화장실 앞은 항상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로 북새통이고, 들어가 보면 꼭 후회한다. 화장실이래야 그냥 아래로 구멍이 뻥 뚫린 변기 한나가 고작이다. 모든 오물은 선로위로 뿌려진다. 남자들이 흔들리는 열차에서 서서 소변을 보니 튀긴 오줌이 바닥에 흥건하고, 어쩔수 없이 들어온 여자들은 행여 치마가 젖을새라 한 손으로 모아쥐고, 또 한손으로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벽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그렇게 불편한 화장실을 사용하던 것이 채 20년전 일이다.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조명이 비치는 한쪽 구석에선 열심히 조근조근 이야기 하는 소위 말빨센 남자가 있고, 그 앞이나 옆에는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경청하며 빠져드는 여자가 있다.

이른바 야간열차 즉석미팅인 셈이다. 보통 3~4시간 같이 앉아 맥주한잔하고, 김밥이며, 삶은 계란도 같이 먹고, 사이다도 나눠마시고, 그러고 나면 순진한 시골처녀는 상대 남자에게 푹 빠져든다. 야간열차를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연이 있기마련이므로, 하다못해 집을 나와서 공순이를 하다 짤렸거나, 버스 안내양을 한다던지, 그도저도 아니면 남의집 식모살이, 이것이 대부분 처녀들이 가질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런 순진한 처녀를 꼬시기 위해 준비된 언변가들은 정치나 연예계쪽의 비화와 외국의 번역 유머 혹은 어줍잖게 시를 몇수 읖조리면서 여심을 공략하고,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선다.

호남선과 경부선이 갈라져서 내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대전역을 일부러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서는 꼭 급행열차를 대피하기위해 10분이상 정차하게 되어있다.

당시는 열차 선로가 단선이어서, 역에서만 서로 교차할 수가 있었다. 하여, 12시에 출발한 급행이 2시에 대전에 도착하였다가 출발하여야만 완행열차는 비로소 출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대전역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가락국수다. 시간과 양이 한정되어 있어서 차가 서기도 전에 뛰어내려서 수증기가 물씬한 가락국수 판매대로 뛰어간다. 돈을 내밀고 몇그릇 받아서 들고 다시 자리로 와서 일행에게 건네주고 후루룩 한그릇 국물까지 깨긋이 비운다음 그릇은 플래폼에 내려 놓기만 하면 나중에 알아서 다 수거해 간다.

15분동안 보통 300그릇 정도의 가락국수를 팔았으니,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알만하다.

경부선 상,하행, 호남선 상,하행 도합 4번의 반짝 장이 새벽에 서는 것이다.

그 옛날의 향수를 찾기위해 대전역에 잠깐 내려 보지만, 그렇게 한그릇 차지하기 위해 냅다뛰던 낭만과 여유는 전혀 찾아볼수 없다.

가락국수를 맛보지 못한 한은 두고두고 남는다. 그래서 서울의 포장마차에는 현재도 5~60대가 많이 찾고, 대전역의 가락국수를 흉내낸 우동이 예나 지금이나 인기가 있었다.



배도 부르고 여정도 많이 지나 이제 서서히 졸려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들리는 말투가 다소 달라져 있다.

서울 말씨가 많이 사라지고, 경상도 억양이 강하게 들린다.



"옴마야.. 오델 만지노?"



길고 긴 추풍령 터널을 한참동안 지날때는 그동안 꼬신 처녀의 몸을 더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요즘처럼 대중앞에서 키스를 할수 있는 정도의 풍조는 아니었지만, 어두운 터널안에서 희미한 조명등이라도 깜박거리면 ...혹은 잘 아는 사람은 화장실 옆 벽면에 휴즈 단자를 열어 조명을 몇개 꺼두기도 한다. 대부분 대전을 지나면 잠자는 승객이 많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차장이 다니면서 불을 끄기도 한다.

양쪽 출입구만 한두개씩 켜두기도 하는데, 그곳에도 신문지를 깔고 기대어 자는 사람들이 알아서 불을 꺼 버린다.

그리하여 터널을 지날때는 열린 창문사이로 반사되어 들려오는 기차바퀴의 철퍼덕철퍼덕 하는 소리와 깜깜한 암흑, 그리고 매캐한 매연과 똥냄새....낮에 열차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꼭 터널을 지날때 큰일을 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커텐도 없이 밖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는 열차화장실에서 용변을 본다는게 꺼림칙해서 였다. 열차선로를 유지보수하는 선로반의 말을 들어보면 터널내 보수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바닥에 온통 똥밭이라고 한다. 다른 곳은 비바람에 씻겨 자연히 없어지지만 터널 안은 보호가 되어 사방으로 퍼진 자국이 아예 똥칠을 하고 있을 정도다.

아주 급한 손님은 역에 정차한 열차에서 대변을 보게되는데,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 문득 바라본 선로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오란 꽈배기 모양의 황금빛 덩어리를 볼때의 그 시골스럼은 이제 중국의 하얼빈 같은데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추풍령에서 옆자리 처녀의 손을 잡고, 가슴을 더듬었던 남자는 그날밤 김천이나 왜관 정도에서 차를 내리게 된다.

역전앞에는 어디나 다름없지만, 여관이나 여인숙이 늘어서 불을 밝히고 있고, 차가 도착할 시간이면 조바 아줌마들이 남자 손님을 잡으려고 줄을 지어 환영한다.

아침까지 대합실에서 기다리거나 여인숙에 가서 잠을 자거나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가거나 이렇게 세부류로 나뉜다.

밤에 문을 여는 식당도 없고, 홍익회 매점도 문을 닫고 잠을 잔다. 먹을거라곤 역앞 광장에 있는 수돗물밖에 없다.

그날 여인숙에서 편하게 손만 잡고 잠만 잔다는 말에 쫄래쫄래 따라 들어간 시골 아가씨는 나올때는 아가씨가 아닌 아줌마가 되어서 나온다.

남자가 적어준 주소하나 달랑 손에 쥐고는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가서 연애 편지를 쓰고 매일 우체부가 오는 시간에 동구밖에 나가 이제나 저제나 연락이 올까 기다려 보지만,

그날, 첫날밤 여인숙에서 생긴 아이는 표시가 날 정도로 배가 불러오고 있다.

장가를 못가고 있던 시골 청년은 서울 친척집에 갔다가 야간열차타고 내려 오면서 아예 참한 색시까지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 야간열차를 용산역에서 타서 구포에서 내릴때까지 꼬박 10시간을 지난 일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책을 읽었다면 서너권은 읽었을 것이고, 소설을 썼다면 한권쯤은 썼을 만큼 많은 생각과 명상과 추억에 젖을수 있는 그런 자아성찰의 시간이었다.



난생처음 부산땅에 도착하여 마침 그곳에서 살고있는 이여인이 다니는 회사에 전화를 했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택시를 타고 달려온 이여인.

첫날 낮에는 혼자 부산역 주변을 서성이며 소심한 여행을 했지만, 그날 밤은 달랐다.

밤이되자 광복동 거리는 서울 명동 못지않게 휘황찬란하고 흥청대기 시작했다. 일본식 간판도 제법 눈에 띄고, 오히려 항구도시인 부산이 수도 서울보다 외국문화가 더 빨리 전파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여인은 멀리 서울서 온 옛 짝사랑 연인을 위해 그날밤 용두산공원부터 자갈치 시장 해운대로 이어지는 환상의 코스를 인도하였고, 밤이 깊어 내일의 여정을 위해 터미널 근처의 깨끗한 여관에 여장을 풀고 통금이 풀리기까지 삼동이와 도란도란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고, 피곤한 여정에 삼동이는 이여인의 무릎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떳으나 이여인은 이미 돌아간 후였고, 쪽지 한장이 머리맡에 놓여 있다.



"푹 자고 11시에 터미널에서 만나"



그렇다, 이여인이 내일 휴가를 내고 삼동이의 여행에 하룻동안 동행하기로 이야기가 오갔지.



11시, 한려수도 남해가는 버스에 나란히 앉아 난생처음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이여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져져 있었지만, 반면에 삼동이는 군대에 대한 생각과 그동안의 모든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에 얼굴이 어둡고 마음도 착잡했다.



긴 터널이라도 있었더면, 이여인은 삼동이를 끌어안고 키스라도 해 줄것 같은 기세였지만 삼동이는 창밖으로 스쳐지는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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