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목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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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목-



사람들로 북적대던 무대는 이미 썰렁한 기운만이 자리하고, 청소를 시작하는 아주머니들의 진공 청소기 소리만이 들려오는 시간, 출연진들은 이미 삼삼오오 자리를 뜰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영식 선배, 안 갈거유? 누구 기다리는 사람 있나?’



‘아니, 나도 가야지. 오늘 수고들 했어. 오늘 목 쉰 사람들 없지? 감기들 걸리지 않게 조심들 하고….참, 그리고, 준현이는 아까 리허설 때 내가 지적했던 그 조명 문제 좀 내일 신경써서 마무리 해 줘…’



그러나, 모두들 대답은 건성 이었다. 이미 대본을 들고, 진행을 하는 단계는 졸업을 했고, 극을 상연해야 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어서 인지, 모두들 몸조심을 하느라 술들도 자제하는 형편이었다. 일반인 들은 연극만 잘 하면 됐지, 몸조심은 또 무어냐며, 물을런지 몰라도, 상연 일정을 앞두고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사실 이었다. 스폰서 측에서 대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베푼 저녁 식사에 식중독이 걸려 빤쓰에 똥을 지려 가면서 까지 공연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반복되는 연습으로 인해 당일에 가기도 전에 주인공이 목이 쉬어 버려 막을 여는 첫 날, 팜플렛과 다르게 제 2 진이 먼저 테이프를 끊는 일 등등,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은 공연 직전에 도사리고 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모두들, 내일 연습 시간에 늦지들 말고, 3일 연빵, 총연습이다. 화띵!’



나를 뒤로 하고 극장을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축 쳐진 어깨로 피곤을 호소하고…나는 청소가 끝날 때까지 객석에 앉아서 오늘 있었던 지적 사항들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었다.



‘또박또박…’



‘…….그대는 누구뇨? 이 어두운 밤, 불도 밝히지 않은 채, 방황하는 쓰라린 심령을 찾아 헤매이는 늑대인가 아니면, 악마더냐?…..하하하….영식 선배, 나 어때?’



나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무대에서 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얼굴을 들었을 때, 무대 위에는 준서가 서 있었다. 이제는 연극 무대에 설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른바 시셋말로 뜬 배우, 한준서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직 형은 이곳을 지키고 있구랴!’



‘바쁠 텐데, 어인 일로?’



‘응, 이곳 근처에서 사진 촬영이 있어서 들렸다가 형 생각이 나서 들려봤지. 여전한 모양 이우? 사람들 가고 난 다음에 극장 지키는 폼새를 보아하니….’



‘나야 뭐 달라질 게 뭐 있나? 뽕잎 밖에 먹을 줄 모르는 촌 놈인데….그건 그렇다 치고, 너 요즘 안 나오는 곳이 없드라?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도 시간에 구애 받질 않고 주야장창 도배를 하드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됩디다. 술 한잔 할라우?’



‘어째 그 말이 않나오나 했다. 그래도 스타일은 옛날 그대로네? 안주는?’



준서는 어렵던 시절 처럼 양쪽 주머니에서 소주와 안주를 꺼냈다. 오징어도 비싸다고 뻥튀기 과자에 술을 들이키던 그 당시를 잊지는 않고 있었던 그 였다. 꺼낸 소주와 이제는 버젓이 사 들고 들어온 진공포장 오징어….



‘형, 그때는 어째 그리 돈이 없었을까? 밥 사먹을 돈도, 잘 곳도 없어서 빌빌대던 때가 엊그제 같네.’



‘너야 임마, 이제 좋은 곳으로 튕겨 나갔으니 그렇지, 아직까지 포스터 붙이고 다니면서 도둑질 하듯이 내빼기는 마찬가지야.’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포스터를 못 붙이게 눈에 불을 켜고 빗자루를 갈겨 대던 미화원 아저씨들의 서슬, 날씨는 들고 간 풀이 얼어붙을 정도로 오지기리 춥기도 추웠다. 선배들은 포스터를 다 못 붙이고 돌아오는 날에는 죽을 것을 각오하라고 을러댔고,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우리 극단의 포스터 쪼가리 하나만 눈에 띄는 날에는 그야말로 초박살이 나던 시기였다.



‘형……. 많이 아프다던데, 이렇게 술 마셔도 되우?’



‘하루 이틀이냐? 멀쩡하던 다리도 못쓰게 된 지가 여러 해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잖냐? 나 이래 뵈도 연극 올리기 전에, 이번에는 여성 잡지사 두 곳에서 인터뷰까지 왔었다, 알아? 너만 매스컴 탈 쭐 알았지?’



벌써부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연극의 연출을 맡은 사령탑으로서 나의 존재는 별 것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세인의 이목을 집중 시킴 으로서 한 사람이라도 관객수를 늘릴 수 있지나 않을까 해서 쾌히 승낙한 인터뷰 인걸 알면, 준서가 꽤나 우스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너 스캔들 장난이 아니던데, 그거 다 사실이냐?’



‘형, 그걸 다 믿우? 속칭 잘 나간다는 애들에게 빠다 발르는 거지 뭐겠어? 인기 떨어질 세라, 없던 스캔들도 갔다가 붙이고, 매니져란 인간이 얼마나 설레발을 떨고 다니는지,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내가 딴년 보지 꿰찬 걸로 신문에 실리니 이거야 원…’



‘모두 거짓말은 아니겠지?’



‘뭐 꼭 그런 건 아니지. 나도 사람인데, 물 좋은 나이트에서 부킹도 받을 수 있는 건데, 그렇게 모르는 여자 만날 때는 찍소리도 없다가, 드라마 내용 때문에 방송국 근처에서 주연 여배우랑 차 마시고 있으면 벌떼 같이 달겨 들어서 무슨 관계 아니냐는 둥, 언제 결혼 발표가 이루어질 것 같냐는 둥… 정말 돌아버리겠다 니깐두루.’



‘행복한 고민이네…이렇게 여유 있어도 되는 거냐? 오늘 녹화나 다른 스케쥴 없냐? 워낙 너야 바쁘신 몸인데…’



‘형, 제발 그러지 마우. 나야 이곳이 내 터전 이었는데, 길거리의 쇼 윈도우 보듯 그냥 지나칠 수는 없잖우? 형 얼굴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소주도 사 들고 왔는데, 손님 대접이 이거 영, 타박 놀음이네 그랴…’



‘미안, 미안, 그렇게 들렸다면 내 사과할게. 요즈음 최종 연습 막바지라 신경이 곤두선 모양이야, 이해해라. 너도 잘 알잖아?’



두 사람에게는 교감이 흐르고 있었다.



‘……민영씨….소식은… 뭐, 들은 거라도 있수? 공연 때 오기는 와?’



준서가 나즈막한 소리로 소주를 털어 넣으며, 물었다.



‘글쎄, 나야 조명이랑 같이 올라가 있으니 객석에 누가 와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이 몸을 해 가지고 커튼콜 받으러 나가기도 뭐 해서 언제나 조연출 시키거든, 너 종철이라고 알지? 걔가 요즈음 큰 몫 한다.’



‘그랬구나.’



두 사람은 말없이 소주를 털어 넣으며, 오징어 얘기를 했다. 술 사먹을 돈도, 안주 걸칠 돈도 척박했던 그때, 그 시절을 떠 올리며…..



‘병원에서는 뭐래? 계속 않 좋아 진데, 아니면 희망이 있데?’



‘맨날 하는 소리가 똑같지 뭐, 나도 그 로렌조 오일인가 하는 영화처럼 혜택 받는 환자이고 싶던 희망도 이제는 접었다. 어차피 치료약 하나 변변히 없는 근무력증 인데, 무슨 덕 볼일 있다고 비벼 대겠냐? 그저, 매스컴에서 장애자가 연극 연출을 한다는 이슈가 부각되고 있어서 그걸로 버티고 있는 실정인데…..’



‘……..’



‘야, 그래도, 이 쌍판대기에 나 이번 연극에서, 연출 끝발로 한자리 배역 한다구. 종철이가 극구 부추켜서 한거지만 서도….’



‘대사 엄청 짧겠구만. 혹시 지나가는 행인 B 아니면, 멀리서 혀를 차는 동네 주민 C 같은 거 아니우?’



‘아니야, 그래도 대사가 지문 포함해서 두 페이지 라니깐? 남들 연기 지도한답시고 퍼질리고 앉았다가 막상 내가 할려니 혀가 꼬이질 않나, 목청이 막히질 않나, 몇 번이고 고사하려다가 하는 건지 몰라. 뭐 기념 이라나 뭐라나…’



‘기념은 또 무슨 얘기유?’



‘자기 친구 중에 애로 쪽으로 내노라 하는 찍사가 있는데, 내가 출연하는 날, 맞춰서 예술 하러 온다나봐. 우리 연극을 비디오에 담아서 준다나 뭐라나…..공짜라고 해서 옳커니 했지 뭐.’



‘…..그때가……. 형이 소품 담당 이던 때였지, 아마? …..그땐…. 펄펄 날았는데….’



준서는 가지고 온 나머지 소주 한 병을 다시 이빨로 따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엊그제 같긴 하네. 너야 빨래판이 그럴싸하니 맨 처음부터 무대에 섰지만 서도, 뭐 나야 그렇냐? 형들 뒤치닥 거리에, 청소에, 품팔이에, 말이 소품 담당이지, 따까리 라는 단어가 딱 맞았지, 뭐.’



군대에서 잘 쓰던 그 따까리 라는 단어가 그렇게 슬프게 들렸던 적은 없었다. 가족들에게는 미친 놈 소리 들어가며, 전공도 몽조리 내팽개치고 연극판에 나와 앉아 있는 나를 가르켜, 돌아가신 아버님 께서는 미친개한테 던져줘도 아깝지 않을 놈이라고 하셨었다. 돌아가실 때에도 병실에 들어오지 말라는 엄명 때문에 문을 빼꼼히 열고, 임종을 지켜봐야 했던 나로서는 이 길로 인해 담겨진 상처가 적지 않았기에…..가족들은 언제나 나를 얘기할 때마다 연극판에서 일취월장한 성공사례로 준서의 연예계 진출을 화두로 삼곤 했다. 뭐니뭐니 해도 사람은 잘나고 볼 일이라는 칭찬 에서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오기를 부려도 안된다는 각설에서부터 나를 안주 삼아 아버님의 지병과 돌아가심의 연유를 몽조리 나와 결부시켜 씹어 돌리는 것이 일상 이었으니까. 그나마 연출이라는 직책이 그럴듯하게 버티고 있어서 체면을 살려 주는가 싶었지만 그게 그렇게 녹녹하게 내 앞에 차려질 밥상만은 아니었던가 싶다.



‘형, 그때 뭔가 느낀 것 없었수? 그 근력 좋던 사람이 밤샘 며칠 했다고 픽 쓰러지더니 일어나서 물그릇 하나 들지 못하게 되는 걸 보고, 난 형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니깐!’



근무력증은 그렇게 나를 갑작스럽게 쓰러 트렸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영양보충이 병세 진전을 막을 수 있다는 열쇠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그걸 추스릴 상황이 되질 못했었다. 불어터진 라면도 감사하게 먹어야 했고, 추운 연습실 구섞 에서 신문지에 돌돌 말려 새우잠을 자기 일 쑤 였던 나의 건강은 그야말로 폭발물 같은 처지 였음을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갑자기 다가온 개막 일정으로 인해서 눈에 불을 켜고 밤샘 연습을 하던 내 시야가 까매지면서 땅바닥이 내 눈 앞으로 벌떡 일어나던 것이 기억의 마지막 이었다. 얼굴을 다 갈아 붙이고 깨어난 나에게 내려진 병명은 처음에는 영양실조 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숨고르기가 끝난 병세는 이제까지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몸을 거세게 쓰러트리기 시작했고….



‘그때, 형이 쓰러지고 나서 민영씨가 얼마나 울고불고 했었는지, 형 모르지?’



나는 얘기로만 전해 들었던 그 후담. 언제나, 조용하지만 낭랑한 음색으로 조연의 역할을 멋들어지게 해내던 그녀….나는 그녀의 대사가 이어질 때, 내 손으로 비추던 조명 아래에서 꿈을 꾸는 듯한 눈동자로 연기를 하던 그녀의 분위기를 더듬고 있었다.



‘민영씨는 요즈음 뭐한다디?’



‘나도 잘 몰라요. 훌쩍 이 바닥을 뜬 사람치고, 성공해서 TV에 나오지 않은 다음에야 소문내고 사는 사람 봤습디까?’



‘하긴 그렇지. 너와 내 등쌀루다가 애저녁에 이 바닥 물, 더럽다고 침이라도 뱉었을 여잔데…..’



‘그거야 철 모르던 어렸을 땐데 뭐.’



‘야, 그게 철 모르던 거라고 할 수 있냐? 다 큰 것들이….헐….’



‘형두 참,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이라 않하요? 딴 사람들은 절대 모를 것인데….’



‘그건 그렇다만….’



나와 준서는 민영이라는 여자와 각별한 사이였다. 그녀는 우리 두 사람보다 연극에 있어서는 관록이 있는 인물 이었다. 상대 배역으로 낙점을 받은 준서 에게 연기지도를 해주고, 나는 두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기가 막힌 각도에서 조명발을 받을 수 있을런지 조언 하던 시절 이었다. 그 짜잘하던 따까리 신세를 뒤로 하고 조명보로 격상된 위치를 스스로 자족하던 그 당시, 그렇게 세 사람은 격이 없이 어울리곤 했다.



‘준서씨는 다 좋은데 발성이 약한 게 흠이에요. 우리는 보통 드라마나 영화 배우처럼 호흡이 섞인 발성을 하면 조지는 거에요. 배에서 끌어 올리는 힘으로 목젖을 사정없이 울리다 보면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감동적인 발성을 할 수 있는 거라니깐요. 선배들이 뭐라 않 해요?’



‘안하긴요? 너 연극도 하기 전에 TV로 튈려고 께꿈다리 집고 서 있느냐고 얼마나 눈총을 줬는데요. 자세가 안 나온다고 맞은 건, 수도 없어서 기억하기도 힘들다구요.’



‘그래, 너 준서 임마, 내가 좇나 잘 보이게 조명 때려주면 뭐하냐? 감정 섞어 대사 하라니까 입안에서 우물우물….’



‘준서씨, 저희는 무대 분장을 하다 보면 얼굴의 표정 연기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어느 선배가 그러데요. 우리의 표정 연기는 그늘에서 결판 난다고요.’



나와 준서는 그늘이라는 얘기에는 금시초문이었다.



‘우리는 조명을 이용해서 감정의 표현을 잘 해야 된다는 말이래요. 조명을 맞받아 칠 때는 환희의 감격을, 조명을 비껴가면서 우중충 해져가는 빛은 혼란한 마음을, 검은 그늘을 드리우는 고갯짓의 정확한 각도는 슬픔에 휩싸인 침잠함을 표현해 내는 도구라는 말이죠. 그리고, 그 분위기를 마무리 짓는 것은 역시나 발성이에요.’



준서는 연극계를 떠나 왔지만 한동안 대사를 내던지는 듯한 연극 특유의 발성법을 버리기까지 또다시 고통을 겪었다고 얘기 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연극의 발성법은 기본기 이면서도 몸에 익히기 어려운 것이 사실 이었고, 몸에 익고 나면 버리기 힘든 것도 사실 이었다. 세 사람은 자나깨나 연극에 대한 열정이 넘쳤고, 배는 고프고, 주머니에는 먼지만이 보풀거릴 지라도, 자신을 지켜 올려다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에 무지한 위안을 받고 있던 처지였다. 거의 날건달과 무일푼에 가까웠던 나와 준서는 언제나 민영씨의 호의에 감사하면서 밥을 얻어 먹었었다. 그나마 준서는 심심 찮게 연극을 보러 오는 여자들의 은밀한 초대에 가끔 못 이기는 척 응하면서, 나름대로 좇대가리에 기름칠이라도 했을망정, 나에게는 좇도 돌아오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민영이란 여자는 준서가 없이도 곧잘 붙어다니곤 했다.



‘준서씨는 요즈음 바쁜가 봐요? 공연 끝나기 무섭게 어디론가 가던데…’



‘얼굴 잘생겼겠다, 젊죠, 배역 끝내주고… 암튼 여자들이 가만 놔 두겠어요? 인기 없다는 이 연극 판도 이런 지경인데, 영화나 TV쪽으로 가면 어떨지 대강 감이 오네요.’



‘영식씬 앞으로 무얼 해보고 싶으세요?’



‘이거 인터뷰 맞죠? 에헴, 그러니까 저만의 소극장을 하나 마련해서리, 저만의 독특한 연극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거 너무 식상하죠? 그냥 밥 세끼나 제대로 먹을 수나 있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꿈이 소박하시네요.’



‘저야, 얼굴로 벌어 먹을 인간도 못 되고, 몸으로 떼우는 인생. 그나마 배운 도둑질이 이거라고 버티고는 있는데, 저마다 내노라 하는 선배들이 꿰차고 있는 연출 자리, 쉽사리들 내어 놓겠어요?’



‘무얼 연출해보고 싶으신지 생각해 두신 것은 있으세요?’



‘저는 국극 같은 분위기의 연극을 올려 보는 게 제 희망이에요. 그냥 대하기에는 신파쪼 이면서도 눈을 떼기에는 너무나 우리와 가깝게 있는 것 같은 그런 슬픈 얘기들 있잖아요?’



그랬다. 나는 언제나 관객들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한 소재 였던 코메디 계통의 시세류 연극보다 울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슬픈 연극을 1년 내내, 아니 10년 정도 롱런 시킬 수 있는 무대를 꿈꾸어 보곤 했었으니까.



‘너무 한 역을 오래 계속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던데, 그 영국 추리작가의 인기 롱런 작품의 주연 배우가 그 역에 심취해서 자기 아내를 극의 내용을 이용해서 완전 범죄를 꿈꾸며, 죽였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그런데, 슬픈 역을 10년 정도 한다? 그 인생이 슬퍼지지 않겠어요? 그런 말도 있잖아요, 불행한 가사의 노래를 계속 부르다 보면 그 가수의 운명조차 불행해 진다는 거요.’



나와 민영씨는 자리를 마주하고 앉기만 하면 연극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웠다. 그녀의 그 고즈넉한 음성을 가까이 에서 듣다 보면, 사타구니가 근질 거리면서 온 몸에는 소름이 좌악 돋곤 했다. 평소에 별로 웃질 않는 그녀의 얼굴은 흡사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우리 세 사람이 모일 적에는 웃음을 도맡아서 내지르곤 했었는데…..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준서의 얼굴이 어지간히 붉어져 가고 있다.



‘형, 예전에는 빈 속에 술 마셔도 한 방울이라도 뺏길까 싶어 술이 취하지도 않았었는데, 내가 요까짓 것 들이키고 이렇게 삥삥 돌기는 정말 처음이네. 형도 오늘 보니, 많이 드시네?’



‘나한테 남은 게 뭐가 있겠냐? 곁에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나, 안타까와 하는 가족이 있길 하나……’



‘민영씨가 있으면 좋으련만…..아 참, 무슨 역할 이우?’



‘참 빨리도 묻는다, 그 자슥! 주인공의 막역지우 인데, 주인공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개그맨이고, 나는 근무력증에 걸린 장애자로 나와. 주인공이 자신의 살아 온 인생이 좇 같다고 하면서 한탄하는 상황에서 내가 주인공을 나무라면서 장애자로서의 고단한 삶에 대한 독백을 들어보라는 식으로 읊조리는 장면이지. 어떠냐? 나에게 딱이지? 분장도 필요 없고….’



‘형, 얘기만 들어도 너무 짠허다. 나 그날, 별일 없으면 꼭 올게.’



그때, 저 뒤에서 매니져라는 사람이 핸폰을 통화하는 채로 내게 인사를 하는지, 모가지에 힘을 주는지 모를 자세로, 엉거주춤, 나와 준서의 사이에 끼어 들었다.



‘아,…….아니,…….. 알았다니까요. 꼭 데리고 갈께요…... 걱정 마세요……..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네…네… 들어가세요…’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그는 준서에게 가자는 눈짓을 때렸다.



‘어딜요?’



그 술자리는 다음 영화의 중요 물주들과 투자자 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특이하게도 나이가 지긋한 여자 분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준서의 뒤꼭지 에서는 찌그렁 냄비에 또 젖가락 휘돌리겠구만 이라며, 투덜대면서 나가는 소리가 이어졌고…나는 다시 혼자 극장 안에 남겨졌다. 연극의 개막을 앞두고, 전동 휠체어 회사에서 선전을 겸해 협찬식으로 나에게 한 대를 선물 하였기에 조금은 편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점점 힘이 부쳐가는 팔과 어깨, 가끔씩 굳어져 가는 혀와 안면 근육들… 나는 병마의 혁혁한 전과를 온 몸으로 느껴대고는 있었지만,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편이 옳았다. 언젠가 종철이가 물었다.



‘선배, 나 이런 거 물어 봐도 되요?’



‘뭔데?’



‘선배도 성욕이 일어나고 그래요? 다리를 못 움직인지 오래 전인데, 아직까지 발기가 되고 그러냐 이거죠?’



‘거럼, 임마! 새벽에 이불이 좇대가리를 누르고 있는데, 텐트를 열나 쳐대서 잠을 못들 정도다, 됐냐? 요런 가이스끼 같으니라구! 냉큼 아까 연습하던 거나 빨리 조져대지, 왠 헛소리 나발통 들이야?’



그러나,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 이었다. 실날 같은 피부의 감각만이 남아 있을 뿐 나날이 살과 근육이 말라 들어가던 나의 하반신에 그런 희망은 없었다. 내가 조명보로 있으면서 쓰러진 다음부터 나에게 섹스라는 단어는 이미 사전에서 사라진 지 오래 전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단 한번, 나에게 섹스의 아름다움을 선사한 일은 이렇게 홀로 있을 때면 나의 뇌리를 부드럽게 간지럽히고 있기는 했다. 그 날은 나날이 보행이 불편할 정도로 다리의 힘이 약해져 가던 어느 날, 단원들이 돈을 모아 휠체어를 사준 날 이기도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그 길고 길었던 여름 장마…나는 휠체어에 앉아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백번도 더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두 겨드랑이에 끼우고 두 다리를 덜렁 대면서 다니던 의족과는 이별이었지만, 그래도 누가 끌어주지 않는 한은 팔에 힘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 였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으면서도 내 몸을 언제까지 내 힘으로 끌고갈 수 있으려나 싶은 걱정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형, 우리 술이나 한잔 합세다. 민영씨가 집에서 맛있는 거 싸 왔다잖수?’



나는 그 당시 딱이 갈 곳도 마땅칠 않아서 연습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던 차였다. 언제나 찬도 없이 라면만 끓여먹던 나에게 민영씨가 싸온 반찬들은 나에게 생일상 같은 분위기를 안겨주고 있었고…나는 아껴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깡술만 연거푸 들이키고 있었고, 세 사람은 조명도 꺼 놓은 채, 촛불 하나만 달랑 켜 놓고, 창 밖으로 들리기 시작하는 장마비의 투닥 거리는 소리 속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은 금방 바닥이 났다.



‘형, 나 술 좀 사갔고 올게.’



준서가 우산도 없이 연습실을 열고, 내 츄리닝 윗도리를 뒤집어 쓴 채로 술을 사러 나가고, 출렁이는 촛불의 일렁임 속에 나와 민영씨, 그렇게 둘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빗소리와 촛불이 가져다 주는 미묘한 느낌의 환영에 둘러싸여 아무런 말도 없이 마주보고 있었는데…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민영씨, 귀신 나오겠네.’



‘매일 이곳에서 혼자 주무시죠?’



‘암요. 누가 방세 내라는 사람도 없고, 귀찮게 쫓는 사람도 없으니….



‘저…. 지난 주에 이곳에 온 적 있어요. 그것도 한밤중에…’



나는 말을 잇질 못했다.



‘의도적으로 볼려고 한 건 아니에요. 연습실에 놓고 간 제 대본이 생각나서 그런 것인데….저,….. 그 날, 다 보고……..또……들었어요….’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되묻고 있었다.



‘뭘요?’



‘영식씨가 제 이름을 부르면서 저 의자에 앉아서…. 하고 있던….. 그거 다 봤어요….미안해요… 그럴려고 그런 게 아닌데….’



나는 그 날도 어김없이 나날이 발기력이 떨어져 가는 내 좇을 안타깝게 붙든 채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도리어 그녀에게 미안했다. 꿈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그런 장면,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머릿속 에서 자위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는 모멸감은 쉽사리 떨쳐낼 수가 없었을 텐데…



‘제가 더 미안해요. 민영씨가 저에게는 유일한 여자 였기에…..불쾌하셨을 꺼에요. 몸도 성치 않은 저 같은 병신 자식이 육백치고 앉았다고 하셔도 할 말이 없네요.’



‘아니에요.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오히려 더 송구스러워 져요……그 작품 기억 나세요?’



‘어떤 거요?’



‘정사라는 작품 말이에요. 사랑하는 남녀가 자살 직전, 나누던 대화로 이루어지던 그 작품 말이에요. 저는 그 날, 이상하게도 영식씨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 작품이 생각났어요.’



‘너무 인상이 강했던 작품이었죠. 저는 그때 민영씨가 준서를 열나 사랑하는 줄 착각했을 정도로 역할을 잘해내시는 통에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때,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제가 그랬죠. 준서씨의 가슴을 쓰다듬으면서…내가 당신의 가슴을 쓸어댈 힘조차 남아있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준서씨가 대답….’



‘……아마 나는 네 품속에서 벌써 죽어 있을 꺼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너를 바라 볼 수 없기에…..이런 대사죠?’



‘아니 그걸 여태까지 어떻게 기억하고 계세요?’



‘민영씨가 나오는 작품의 상대역 대사는 아마 천번도 넘게 저 혼자 연습했을 거에요. 언제나 준서가 그 역할을 대신 했지만….’



민영씨는 멍하니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눈길을 피해 빗소리를 듣는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거, 이거, 비가 와도 된통 쏟아지네, 하늘이 빵꾸가 났다니깐. 내가 이렇게 고생 고생하며, 술 사왔는데, 아니 청춘남녀 께서는 그렇게 술을 앞에 놓고 장사 지내시고 계시면 되남?’



온몸이 흠뻑 젖아 술을 한아름 사 들고 들어온 준서가 웃통을 벗었다. 체온으로 말렸다가는 감기 들기 십상이라면서 그 늠름한 몸짱을 여실히 드러냈다. 런닝도 벗고, 맨살을 수건으로 닦아내는데, 같은 남자가 봐도 탐스러운 육체미가 부럽기까지 했다.



‘야, 준서야, 뭐 기 죽일 일 있냐?’



‘앗 나의 실수!’



준서는 수건을 어깨에 두르고 소주를 이빨로 깠다. 그때부터 민영씨는 거나한 폭음을 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이 말리는 것도 듣질 않은 채, 술잔을 털어 넣었다.



‘민영씨? 이래서 집에 갈 수 있겠어요? 어머님이 걱정 하실텐데….’



준서가 거들고, 나도 말렸다.



‘괜찮다니깐, 꺽..끄윽…그리고, 너 준서, 이 뺀질이…너 영식 선배가 얼마나 불쌍하게 사는지 알기나 아냐? 꺼..윽..끅…응? 이 놈아!’



술로 혀가 꼬부라진 상태에서 민영씨는 준서를 나무라고 있었다.



‘야, 이놈아, 너는 그 잘생긴 쌍판데기 덕에 기집들이 줄을 섰다만 영식 선배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도 못하고서리…꺽 …끄윽…. 딸딸이로,… 한숨으로 …..밤을….이런 창고 같은 곳에서 새우잠을…. 자 가면서 지새우는데…..넌 뭐냐 이거야, 이 나쁜 호로쇄끼야!….꺽…끄윽…….’



그녀의 언성이 높아지고, 상소리가 섞여가면서 술자리는 묘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녀가 맨 정신 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내가 말리고 어쩌고 해도, 혀만 틀어졌을 뿐이지, 자세는 꼿꼿이 유지한 채로 소리를 쳐대는 그녀의 시퍼런 서슬, 때문이 아니었는가 싶다.



‘민영씨 많이 취했어요. 어서 준서에게 바래다 달라고 하세요. 저도 자야 겠어요.’



나는 자야겠다는 핑계로 술판을 깰 요량으로 퉁명스럽게 말해 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민영씨가 고개를 수그리며 훌쩍이기 시작하고….



‘흑흑…왜 바보같이 좋아하면서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고…. 몸이 병신 인 것 보다, 할 말을 못하는 게 더 병신 같은 건데….내 까짓 게 뭐라고, 내가 무슨 대수라고…..’



준서는 중간에 들어왔지만 대강의 분위기를 짐작하는 것 같았다.



‘준서씨? 영식 선배…… 이제는….이제는 섹스 할 수 없죠? 발기도 안되는 거 나 다 알아요.’



‘……맞아요….얼마전 부턴가 부터…..’



그 사실은 준서만이 알고 있었는데…



‘준서씨 나, 부탁이 있어요. 오늘밤만, 꺽…끄윽….오늘밤만 내 상대로 영식선배가 되 줘요. 뭐 그냥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영식선배와 내가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고요,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준서가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었으며, 나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휠체어를 뒤로 천천히 물렀다. 촛불의 아른 거리는 잔영과 두 사람의 일렁이는 실루엣이 비쳐대는 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민영씨는 대본도 없이 나에게 많은 말들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것도 옷을 벗어가며…..



‘영식씨, 자 이제 봐요…..더 이상 상상 속에서만 보던 내가 아닌 실제로 나란 여자를 만져 보라니깐요!’



준서가 그녀의 젖무덤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만지고 싶었으면, 더 주물러 봐요, 손안에 꽉 쥐어봐요. 어서….’



나는 그렇게 머물러 뒤에 버티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힘들지만 휠체어의 바퀴를 굴려 연습실 야전침대에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준서와 민영씨 였지만 이미 두 사람은 민영씨와 나를 대변하고 있었고, 준서가 쓰다듬는 민영씨의 젖과 반대편 유방을 쓰다듬고 있는 나란 인간은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질 않고 있는 유령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민영씨, 내가 얼마나 그리워 했으면, 그랬을까 상상이 가요?’



준서가 나의 역할을 하면서 그녀의 가랭이를 벌리며 보지에 얼굴을 묻었다.



‘영식씨,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저는 그저 몸이 불편한, 착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동정심 뿐이었어요. 그 밤에, 그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흑흑…..억억’



‘이렇게 내 좇을 민영씨 입에 담그고 싶어서 얼마나 많은 밤들을 지새웠는지 모를 겁니다. 민영씨….’



준서는 그 멋진 좇대를 앉아있는 민영씨의 입을 열고 때려 넣고 있었다. 커다란 구슬 사탕을 볼에 물어버린 것처럼 그녀의 입과 목구멍 구석구석을 내지르는 준서의 좇, 그것은 내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힘든 팔을 겨우 들어 그녀의 촉촉해진 보지털을 그저 쓰다듬어 볼 뿐, 아무런 것도 해주질 못하고 있었지만, 준서는 나의 마음처럼 그녀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모든 것을 해주고 있었다.



‘영식씨, 웁욱, 이렇게 입말고, 내 보지에, 내 씹구녕에 당신의 자욱을 남겨줘요. 영식씨, 당신의 좇대가 이제는 그리워요. 느끼고 싶다구요….어서요….’



야전침대 위에 민영씨가 눕고, 준서가 그 위에 몸을 실었다. 나는 그 옆에서 유령마냥 앉아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벌써 그녀의 보지를 쑤셔대고 있었다. 준서처럼….



‘그렇게…그렇게……억억….윽윽…영식씨, 사랑해요, 저도….사랑하고 있다고 하면…윽윽…늦은 걸까요?…..윽윽…’



‘아니, 민영이, 내가 얼마나 그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이 밤이 마지막 이라 해도….난 행복해… 행복하다구. 나란 사람을 사랑해 주다니…..윽윽’



준서는, 아니, 나는 민영이가 울부짖으며, 울어대는 얼굴을 핥아가며, 두 손은 그녀의 엉덩이를 양쪽으로 움켜 잡고 벌린 채로, 허리를 있는 대로 치켜 올렸다가 내리꽂는 사생결단의 좇질을 하고 있었다. 철벅대는 그녀의 보지에서 흐르는 씹물은 내 아랫도리를 허옇게 물들이고 있었고, 온 살들은 서로의 부딪침으로 인해 벌겋게 되어 가고 있었다. 내 몸에 짓눌려 버둥대면서 허공을 향해 벌려진 그녀의 두 발끝은 간간히 쭉쭉 펴지면서 경련을 일으켰고,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어린 송아지처럼 덜렁거렸다. 나는 그녀를 일으켰다. 야전 침대에 앉은 채로 다리를 있는 힘껏 좌우로 벌리게 한 뒤에 내 좇 위에 그녀의 몸을 올렸다.



‘민영아, 어서 그 예쁜 엉덩이를 들썩이며, 내 좇 위에서 춤 춰봐. 어서…’



그녀는 진짜 춤을 주는 것 같았다. 두 다리를 벌린 채로 좇 위에 걸터 앉았음에도 허리를 위아래로 열씸히 움직이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두 팔은, 앞으로 나란히, 라고 외치는 유치원 생들 처럼 정면을 향해 뻗어져 있었다. 그 손이 닿는 곳에는 그녀의 보지 밑에서 좇을 치받치게 올려 박는 나와 같은, 또 다른 내가 앉아있었고…..그녀는 그런 자신을 황홀한 기쁨에 젖어 정면에 앉은 채로, 바라다 보고 있는 나의 두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면서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었다.



‘영식씨, 울지마요…. 사랑해요…… 울지마요…..내가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 때까지…….윽윽…….ㅇ.ㅏ.ㄱ…….’



준서의 고함과 그녀의 신음과 비명, 그리고, 그것을 파묻어가고 있는 그 장중한 장대비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어지럽힌다. 나는 그녀가 울면서 나의 두 뺨을 어루만지던 그 얼굴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나에게는 오로지 그 기억의 조각을 야금거리며 파먹고 사는 그런 조잡한 인생일 지언정…….



‘선배, 나 왔수!’



벌써부터 준서를 둘러싸고 팬들의 싸인 공세가 시작되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만, 준서는 당당하게 그 사이를 뚫고, 무대 뒤로 돌아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와! 이거 대박 같다. 내가 입구에서 보니까 사람들이 엄청 줄 섰더라니깐! 형, 한껀 단단히 한 거 같수. 곳곳에 화환이며, 꽃들이 무진장 왔드구만, 난 맨 처음에 무슨 향수 터뜨려 놓은 줄 알았지 뭐요? 이거야 원 결혼식 같아서리…..이따가 연기나 실수 없이 잘 하쇼. 난 조명발 잘 받는 곳에 가 앉아 있을 테니, 아까부터 종철이 자슥은 새신랑 같이 차리고 설랑은, 공짜표 나눠주고, 비디오 찍고, 난리가 아니드구만…. 화띵!’



막이 열리고, 단원들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슬픈 내용의 중간중간에 울면서도 웃어야 하는 개그맨의 우울한 농담들은 사람들을 웃으면서, 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었다. 나의 차례가 돌아오고, 나는 내 대사를 어떻게 토해놓고 왔는지 조차, 기억에도 없이 온 몸에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무대 뒤로 휠체어를 타고 돌아 들어왔다. 나는 너무 긴장 했던 모양인지, 그 길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강행군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정신력으로 밀고 나간 결과였다.



‘형, 정신이 드우? 나 준서야! 알아 보겠수?’



‘응, 왜 이렇게 다들 몰려 왔어? 내일 연극 준비하러 빨리 집에들 가질 않구서….’



눈을 떠 보니 주위에는 단원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 괜찮아. 어디 쓰러진 게 오늘 하루냐? 뭐 씹은 표정들 하고는… 그럴 시간 있으면 어여 집에들 가서 마누라 궁딩이나 뚜들겨 줘. 이제 고생 끝이라고 썰도 풀어가며, 얼릉? 나 잠 쫌 자야 겠으니….’



모두들 돌아가고, 병실에는 준서 만이 남았다. 가던 길에 종철이가 낮에 찍은 거라며, 비디오 기기를 병실의 TV에 연결 시켜 놓았다고 하길래 내가 틀어 보라고 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 정말 준서의 말처럼 극장 밖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객석은 입추의 여지 없이 꽉 들어 찼고, 화환으로 극장 입구는 더욱 화려하게 보이고 있었다. 무대의 옆에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리본이 달린 커다란 행운목이 서 있었고…..



‘야, 준서야! 저 행운목, 누가 가져다 놨는지, 너 혹시 아냐?’



‘아니, 난 반대 편에 앉아 있어서 그게 행운목인지도 몰랐네 그랴. 근데, 정말 꽃 이쁘게 피었네, 꽃 피우기가 엄청 힘들다던데…..’



나와 준서는 무슨 결혼식 기념 비디오를 보는 기분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불이 꺼지기 전에 왁자지껄 하며, 떠들면서 팜플렛을 보고 있는 객석을 향해 카메라가 주욱 한바퀴 돌아가고 있었다.



‘잠깐!’



‘왜?’



준서가 연결되어 있는 비디오 카메라의 리와인드 버튼을 누르고 플레이를 누르고, 몇 번을 반복하다가 어느 장면에서 히끄무레 하게 보이는 장면에 포우즈를 시켰다.



‘형, 이 사람, 누군지 알겠어? 잘 봐봐…..약간 허옇게 구석팅이에서 찍혀서 구분이 잘 가지는 않지만…..’



나는 자세히 보려고 눈을 가늘게 떴지만 피로 때문인지 초점이 잘 맞질 않고 있었다.



‘형…..저 여자, 혹시 민영씨 아니우? 저 하얀 가다마이, 나 언젠가 본 적이 있거든, 내 말이 맞지? 저 여자, 민영씨 맞지?’



나는 초점이 맞질 않은 장면에서 괜시리 준서가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때 준서가 어디론가 전화를 때렸다.



‘응, 나 준서 선밴데, 아직 극장 안에 사람들 있지? 그래, 잘 됐네, 누구 한 사람 빨랑 무대 왼쪽 옆으로 뛰어가서 행운목에 걸린 리본에 뭐라고 씌여 있는지 봐봐. 전화 끊지 말고, 말이야. 얼릉….’



나는 무슨 일인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내가 집히는 데가 있어서 말이야. 아까 화환이 어디서 왔는지 내가 다 둘러 봤는데 오직 그 행운목만 어디서 왔는지 몰랐어. 형이 말 않 했으면 나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텐데…응..응…그래…. 알았어… 전화번호가 …….000에 000,0000, 다시 한번 불러 봐.’



준서는 전화번호를 받아 들고는 바로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거기가 000에 000,0000이죠? 여기는 극단 사랑인데요, 혹시 오늘 공연장에 행운목 갔다 놓으신 분, 계시면 통화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즈음부터 준서가 대답도 하질 않고 전화기와 함께 얼어붙은 듯이 서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를 받다가, 준서는 얼굴이 하얗게 되면서 비틀대더니, 그냥 자리에 주저 앉은 채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건만, 준서는 전화를 받으면서 눈물만 뚝뚝 흘릴 뿐, 나에게 대답해 주질 않았다. 전화를 끊고, 준서는 한참 동안이나 말을 하질 못했다. 내가 누워 있는 침상 옆에 의자를 갖다 놓고서야 준서는 겨우 입을 열었다.



‘형, 내가 뭐랬수? 그 행운목, 무언가 있다고 그랬잖아?’



‘전화 받은 사람이 누구라 하든?’



‘응…. 그게……그게….’



‘답답하네, 아니 얘가 왜 이 지랄 인가?’



‘민…영…씨 어머님이셨어…..’



‘뭐 그걸 가지구…. 그럼 민영이가 온 게 사실 이구만. 하, 보고 싶었구만 서도, 내가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무대에 꽃다발이라도 갖고 오지, 엄마를 시켜서 행운목은 또 뭐야, 행운목이, 늙은이도 아니구설랑…’



‘형 잘 들어, 그 비디오에 나온 것은 우리가 보기에도 민영씨 였지만 진작 민영씨는 오질 않았어. 그건 민영씨 어머님 이셨데, 오래 전에 모녀가 함께 맞추었던 옷인데, 그걸 입고 가라고 그랬다는 거야.’



‘누가, 민영이가? 지는 안 오고?’



‘…. 올 수가 없지, 당연히… 죽었으니까… 민영씨가 죽은 지 바로 1주기가 되는 날이 바로 오늘 이었데. 몇 년 동안 준비해 오다가 지난 해에 영국으로 연극 공부 하러 간다고 갔다가 아마 그곳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모양이야. 영국은 일본처럼 우리와 차선이 반대 잖수? 형체도 못 알아 볼 정도로 부서진 차 안에서 발견되었는데 용케 1주일이나 버티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하시더라.’



귀가 멍멍해져 왔다.



‘민영씨 죽고 쓰던 물건 들이랑, 옷가지들은 전부 태웠는데, 그 행운목 만은 민영씨가 애지중지 키우던 것이라 집안에 남겨 두었다나봐. 그런데 그게 1주기가 다가오면서 꽃몽우리가 쑥쑥 나오더니만 오늘 새벽에 활짝 핀 것을 가족들도 모두 몰랐다는 거야. 어제 밤 꿈에 민영씨가 어머님 꿈속에 나타나서 친한 친구가 오늘 연극을 하는데, 자기가 못 가니 엄마라도 대신 가달라고 하면서 그 행운목을 꼭 싣고 가라고 그러더래. 그 향기가 좋아서….. 사람들이…..그리고 그 친구가……. 너무 좋아할 거라고 말이야. 그리고, 반드시 그 옷을 입고 가서 자기가 말한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그랬대지, 아마? 표는 종철이가 입구에서 주었대, 커다란 행운목에, 꽃까지 활짝 핀 것을 들고 들어오시는 민영씨 어머님을 멀리서 그냥 보고 알아챈 거지.’



나는 비디오를 다시 돌려 보자고 했다. 몇 번을 보아도 그 모습은 민영씨 였다. 어머님이 같은 옷을 입고 오셨다고 해도 구분 못할 나와 준서가 아니었기에…..준서는 차마 화면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고, 나는 시들어가는 나 같은 육신을 지닌 놈이라 할지라도 그때 그 장마비가 장대처럼 쏟아지던 여름 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약속을 지켜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민영아, 기다려 주렴, 이 곳에서 더 이상 너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되면 바로 네 곁에 가 있을 테니….’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모양이다. 누군가 행운목을 버리지나 말았으면 좋겠는데…..



-끝-



P.S.: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그저 몇 줄의 메모에 의지해서, 쓰려고 했던 이번 주의 계획을 모두 뒤로 미루고, ddaesk님을 위한 맞춤소설에 매달리게 될 줄은 말입니다. 독자 한 분을 위한 맞춤소설, 정말 정신 없이 써 내려갔네요. ddaesk님께 이 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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